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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29]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찾아가 우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1~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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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서야 찾아가셨습니다(17절). 유대인의 장례 관습에 따르면, 죽은 지 나흘째가 되면 방성대곡을 합니다. 주님은 죽음의 권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간에 찾아가신 것입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이곳에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지막 부활에서 다시 살 줄을 안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장례식장에서 의례적으로 오가는 위로의 말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아니다. 나는 마지막 날 다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25절)라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부활이다”라는 말씀은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존재이고, 죽음은 더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내가 생명(영생)이다”라는 말씀은 주님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과 연합하는 생명력 넘치는 영생의 삶을 살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주님을 믿는 자에게 죽음의 권세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자는 것에 불과합니다(11~14절). 육체적 죽음은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생명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입니다. 이에 마르다는 믿는다고 고백합니다(27절). 마르다는 주님을 그리스도(유일한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신성을 지니신 분), 세상에 오시는 분(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동네 사람이 슬피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3~35절). 그리고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키는 표적을 행하심으로 마르다의 신앙고백이 옳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공회가 열렸습니다. 그들은 이 일로 사람들이 예수를 추종하게 되면 로마 당국은 반역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이스라엘을 멸할 것이라 걱정합니다. 그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말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45~53절). 이로써 예수님의 죽음이 ‘대속적 죽음’임을 대제사장의 입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은 성육신의 진리를 감동적으로 전해줍니다. 주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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