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9] 아브라함은 울었고, 땅을 샀다 (창세기 23장1~6절, 19~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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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사건 이후 죽을 때까지 평탄한 삶을 산 듯합니다. 반면 사라는 어떠했을까요? 자신이 90세에 낳은 아들을 남편이 죽이려 했으니 그녀는 남편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그 후 사라는 큰 상처를 입고 산 것 같습니다.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들어가서”(2절) 그녀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들어가서’라는 말이 사라의 텐트(빈소)에 들어갔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헤브론으로 들어갔다는 뜻일까요? 후자의 의미라면 죽기 전 사라는 아브라함과 같이 살지 않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위하여 슬퍼했습니다. 그는 울음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일에 매우 단호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가 아니라 ‘받아들일 때’입니다. 137세의 노인 아브라함의 슬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부부의 소중함,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애통하면서 앉아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헷 족속에게 자신을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4절)로 고백하면서 아내를 위한 매장지를 구했습니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6절)로 인정하면 원하는 땅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도 ‘복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겔이라는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에브론의 밭을 삽니다(16절). 하나님과도 흥정한 아브라함은 왜 에브론과는 가격협상을 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관례에 따르면, 땅이 실거래보다 싸게 팔릴 경우 후손이 원래 거래가격을 지불하고 땅을 물릴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땅과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땅에서 자신과 후손이 복이 되는 삶을 사는 살기를 원했기에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땅을 산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과 굴을 ‘무를 수 없는 자신의 소유지’로 삼았습니다(19절). 아내 사라뿐 아니라 후에 자신도 이 땅에 묻힙니다(창25:8~10). 먼 훗날 애굽에서 야곱은 이곳에 자신을 장사해 달라고 유언합니다. 이곳은 바로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돈 주고 산 땅,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신의 부인 레아가 묻힌 막벨라 굴입니다(창49:29~32).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후손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도록 기꺼이 모험할 수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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