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6] 주의 만찬에 합당하게 참여하세요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
본문
초대교회의 ‘주의 만찬’은 모일 때마다 같이 먹는 실제 식사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모일 때마다 ‘주의 만찬’을 거행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에 대해 칭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자와 자유민은 먼저 와서 식사하고 취해있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자와 노예는 힘든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오니 앉을 자리도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무시를 당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소식을 듣고 그들의 행하는 만찬은 ‘주의 만찬’이 아니라 ‘자기의 만찬’에 불과하다고 꾸짖었습니다(17~22절). 그리고 ‘주의 만찬’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주의 만찬’의 떡과 잔은 우리를 위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의 만찬’은 바울이 그렇게 강조했던 십자가의 도(십자가의 복음)를 몸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23~26절).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생겨난 공동체입니다. 주님은 부자와 자유민뿐 아니라, 가난한 자와 노예를 위해서도 몸을 찢기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주님이 가난한 자와 노예를 위해서는 피를 조금만 흘리시고 부자와 자유민을 위해서는 더 많이 흘리셨습니까? 교회 공동체 성도들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자유민이든 노예든 모두 주님의 피로 산 소중한 존재들이며 주의 만찬에 함께 먹는 한 가족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떡은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10:17)라고 표현했습니다. “많은 우리”란 수적으로 많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위치가 다양하다는 뜻입니다. ‘주의 만찬’은 다양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한 몸임을 경험하는 식사 자리입니다.
지금도 성찬을 통해 우리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샬롬의 관계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할 때 주님은 영적으로 임하셔서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또한 성찬을 통해 우리는 수평적으로 다른 성도들과 샬롬의 관계를 경험합니다. 이렇게 성찬은 ‘샬롬’을 경험하게 하는 유익이 있지만, 합당하지 않게 참여할 때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 되고(27절), 주님의 심판과 징계를 자초하게 됩니다(31절). 따라서 성찬에 참여할 때 반드시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28절).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지은 은밀한 죄를 회개하라는 뜻이라기보다, 교회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고 말했는지 돌아보라는 뜻입니다(29절). 우월의식과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서로 기다리라”(33절)는 바울의 권면은 ‘주의 만찬’에서 공동체가 하나 되는 일에 힘쓰라는 도전입니다(엡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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